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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ndly Shandong | 중국 도교 ‘전진교’ 제5대 장교 – 구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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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교 ‘전진교’ 제5대 장교 – 구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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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협 드라마로 더욱 친숙한 김용 소설 ‘사조영웅전’에는 전진칠자 구처기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금나라와 결탁한 간신 왕도건을 살해해 내장을 씹어 먹는가 하면, 송나라 황제가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정강의 변’ 잊지 말라며 곽정과 양강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또 곽정과 양강이 18년 후에 무공 대결을 펼치게 하자는 약속을 하는 등 전체 극 전개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어 소설 ‘신조협려’에서는 양강 아들 양과를 전진파 문하로 받아들였지만 제자들이 왕따를 시켜, 결과적으로 양과와 고묘파 소용녀를 만나게 하는 ‘신의 한수’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전진교 제5대 장교인 구처기는 실존 인물입니다. 김용 소설에서 묘사된 ‘성격이 불 같고 내기를 좋아하는’ 캐릭터와는 별개로, 실제 역사에서 구처기는 한 마디 말로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살육을 멈추게 한 ‘일언지살(一言止殺)’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구처기는 산동성 연대시 서하현 출신입니다. 19살 때 출가하며 곤유산에서 수행했고, 20세때 전진교 시조인 왕중양의 제자가 됐고 뛰어난 자질로 전진칠자에 합류합니다. 왕중양이 별세한 후 섬서성 반계에서 7년, 용문산에서 6년간 수행을 하며 내공을 쌓았습니다.

50대가 되어 다시 고향인 서하로 돌아와 태허궁을 세우고, 청도 노산을 오가며 수도에 정진합니다. 노산 앙구 백용동에 남아있는 석각 20수를 비롯해 태청궁과 상청궁 등에는 구처기가 남긴 수많은 시와 사가 많습니다.

55세 때 비로소 전진교 제 5대 장교가 됩니다. 1222년 70대가 되어 칭기즈칸에게 초빙돼, 그를 만나기 위해 삼만오천리 떨어진 서역행을 감행합니다.

칭기즈칸은 진시황과 한무제와 마찬가지로 구처기에 ‘불로장생’의 비법을 묻습니다. 이에 대해 구처기는 “양생법은 있지만 불로장생약은 없다”고 통쾌하게 답변합니다. 그리고 양생법으로 ‘경천애민’과 무고한 양민을 도살하는 것을 중지하라고 건의합니다.

칭키즈칸은 구처기를 인정하고, 중국 도교를 총괄 대종사로 임명합니다. 그 후 연경으로 돌아와 노예 3만명을 양인으로 해방시켜주는 등 활동을 하며, 남송 시기부터 원나라 초기까지 오랜 전란으로 고통받던 백성들에게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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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friendly shan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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